남들 다 가는 로마·피렌체 , 차 빌려서 달리면 인생이 바뀌는 이탈리아 시골길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면 대다수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피렌체의 두오모, 베네치아의 운하를 먼저 생각한다. 물론 세계적인 유적과 화려한 르네상스 예술을 보는 것도 벅찬 감동이지만, 하루 종일 수많은 인파에 치이고 끊임없이 소매치기를 경계하다 보면 여행 막바지에는 묘한 피로감이 몰려오곤 한다.

“진짜 여유롭고 낭만적인 이탈리아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만한 초원 언덕 위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고, 차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다 작은 중세 마을에 들러 진한 에스프레소와 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그런 풍경. 대중교통 시간표에 쫓기지 않고 내가 멈추고 싶은 풍경 앞에서 마음껏 차를 세울 수 있는 ‘낭만과 미식의 렌터카 로드트립’을 오늘의 테마로 잡았다.

남들 다 가는 로마·피렌체 , 차 빌려서 달리면 인생이 바뀌는 이탈리아 시골길

낭만과 미식이 흐르는 인생 로드트립

오늘 다룰 테마는 틀에 박힌 관광지 순회를 벗어나 오롯이 창밖 풍경과 미식을 즐기는 감성 로드트립이다.

이 테마를 만족시키려면 몇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첫째, 렌터카로 운전하며 달리는 도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둘째,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닌 아담한 소도시들이 이어져야 한다. 셋째, 그 지역만의 독보적인 와인과 로컬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풍성해야 한다.

왜 이탈리아 토스카나 발 도르차(Val d’Orcia)인가?

이 조건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은 단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심장, 발 도르차(Val d’Orcia) 평원이다.

발 도르차는 계곡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경관의 완성도가 압도적이다. 르네상스 시대 농경지의 미학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과 구릉지, 그리고 그 길을 호위하듯 서 있는 짙푸른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숨 막히는 절경을 만들어낸다. 기차나 버스로는 구석구석 닿기 힘들어 반드시 렌터카를 운전해야만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운전대를 잡고 언덕을 넘을 때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명장면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로드트립으로 꼭 들러야 할 소도시 TOP 5

1. 피엔차 (Pienza)

교황 비오 2세가 자신의 고향을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도시’로 재건축한 유서 깊은 성곽 마을이다. 아담한 성벽 골목마다 화사한 꽃 화분과 붉은 벽돌집이 어우러져 있어 걷는 내내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특히 피엔차는 양젖으로 만든 전통 치즈인 ‘페코리노(Pecorino)’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치즈 가게마다 풍기는 고소한 향이 발길을 붙잡는다. 성벽 외곽 산책로(Camminamento Panoramico)에 서서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발 도르차의 황금빛 구릉지를 내려다보며 젤라토를 먹는 코스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산퀴리코도르차 (San Quirico d’Orcia)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엽서 사진의 배경이 모여 있는 핵심 거점이다. 마을 외곽 도로변에는 들판 한가운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둥글게 모여 자라난 ‘치프레시(Cipressi)’ 군락지와, 완만한 언덕 위에 외롭게 서 있는 16세기 작은 예배당 ‘비탈레타 예배당(Cappella della Madonna di Vitaleta)’이 자리 잡고 있다. 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대고 들판으로 내려가 해 질 녘 주황빛 노을이 초원을 물들이는 순간을 바라보면 왜 전 세계 사진작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3. 몬탈치노 (Montalcino)

이탈리아 최고의 프리미엄 레드 와인으로 꼽히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의 고향이다. 해발 500m가 넘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중세 요새 마을로, 마을을 둘러싼 사방의 경사면이 모두 포도밭으로 뒤덮여 있다. 마을 정상에 위치한 14세기 로카(Rocca) 요새 성벽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요새 내부의 에노테카(와인바)나 마을 골목의 와인 숍에서 현지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와인 테이스팅을 즐기는 것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4. 몬테풀차노 (Montepulciano)

가파른 언덕 능선을 따라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 궁전과 중세 건물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는 유서 깊은 와인 도시다. 이곳의 명물인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는 ‘귀족의 와인’이라는 이름답게 깊고 우아한 풍미를 자랑한다. 특히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마을 지하 와인 셀러(Cantina) 투어가 유명한데, 마치 거대한 지하 동굴 성당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오크통 사이를 거닐며 시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 꼭대기 피아자 그란데(Piazza Grande) 광장은 영화 <뉴문>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5. 바뇨 비뇨니 (Bagno Vignoni)

일반적인 유럽 광장과 달리, 마을 중심 광장에 거대한 직사각형 온천탕(Piazza delle Sorgenti)이 자리 잡고 있는 아주 독특한 온천 마을이다. 로마 시대부터 교황과 귀족들이 휴양을 위해 찾았던 곳으로, 화산 지열로 데워진 따뜻한 온천수가 뿜어져 나와 신비로운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중앙 광장 탕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마을 뒤편 절벽 아래로 흐르는 자연 온천수 수로(Parco dei Mulini)에 발을 담그고 무료로 족욕을 즐길 수 있어 장시간 운전으로 쌓인 발의 피로를 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토스카나에서 꼭 맛봐야 할 로컬 미식

토스카나 음식은 화려한 기교 대신 땅과 목초지에서 얻은 신선한 원재료의 맛을 투박하면서도 정직하게 살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Bistecca alla Fiorentina): 토스카나 전통 키아니나 품종 소의 티본 부위를 숯불에 두툼하게 구워낸 스테이크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미디엄 레어로 구워 소금과 올리브오일만 살짝 곁들여 먹는데, 묵직한 BDM 와인과 곁들이면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이룬다.
  • 피치 파스타 (Pici Pasta): 토스카나 시에나 지역의 전통 생면 파스타로, 손으로 굵게 밀어 만든 우동 면처럼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야생 멧돼지 라구 소스(Ragù di Cinghiale)나 마늘 향이 진한 토마토소스(All’Aglione)를 듬뿍 얹어 먹는다.
  • 페코리노 치즈와 꿀 (Pecorino di Pienza): 피엔차의 특산품인 양젖 치즈다. 숙성 기간에 따라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부터 단단하고 짭조름한 맛까지 다양한데, 토스카나산 야생화 꿀이나 무화과 잼을 살짝 얹어 먹으면 와인 안주로 완벽하다.
  • 리볼리타 (Ribollita): ‘다시 끓였다’는 뜻의 토스카나 전통 가정식 수프다. 딱딱해진 빵과 카발로 네로(케일의 일종), 흰 강낭콩, 각종 채소를 올리브오일과 함께 푹 끓여내어 속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달래준다.

여행 시기와 렌터카 운전 팁

토스카나 구릉지의 초록빛 물결을 보고 싶다면 5월에서 6월 초, 황금빛으로 익은 밀밭과 포도 수확의 활기를 느끼고 싶다면 9월에서 10월이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구분상세 내용 및 실전 팁
비자 및 입국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솅겐 협약에 따라 180일 중 최대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렌터카 준비한국 운전면허증 외에 국제운전면허증과 여권, 본인 명의 신용카드가 필수다. 소도시 골목이 좁으므로 소형~준중형 차량을 추천한다.
ZTL(차량통행제한구역) 주의이탈리아 소도시는 대부분 중심부에 일반 차량 진입이 금지된 ZTL 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카메라에 찍히면 무거운 과태료가 부과되므로 마을 외곽 공영주차장에 주차 후 도보로 진입해야 한다.

경비의 경우 렌터카 비용은 보험 포함 하루 7만~15만 원 선이며, 로마나 피렌체 공항에서 픽업 및 반납하는 일정이 가장 수월하다. 숙소는 일반 호텔보다 토스카나 전통 농가 민박인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에서 묵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1박당 12만~25만 원 선으로,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 둘러싸인 수영장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조식을 맛볼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한다

  • 유명 대도시의 소음과 인파에서 벗어나 진짜 유럽의 평화로운 시골 정취를 느끼고 싶은 분
  • 빡빡한 기차 시간표 대신 내 마음대로 차를 세우고 풍경을 감상하는 로드트립을 꿈꾸는 분
  • 깊은 풍미의 와인과 투박하지만 깊은 맛의 이탈리아 전통 요리를 사랑하는 미식가
  • 부부나 연인과 함께 평생 기억에 남을 영화 같은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은 여행자

마무리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언덕을 오르며 마주하는 풍경의 깊이는 전혀 다르다. 달리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람 소리를 듣는 자유, 우연히 들어간 작은 와이너리에서 농장 주인이 건네는 와인 한 잔을 맛보는 여유야말로 로드트립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마음의 여백이 필요하다면, 이번 휴가에는 기차표 대신 자동차 키를 손에 쥐고 끝없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손짓하는 토스카나의 구릉지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공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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